수면양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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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0231 min read
요 며칠새 바람이 차가워졌다.
늘 그렇듯 오늘 아침에도 커피를 들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우리집 다이닝룸에 있는 직사각형 식탁의 맨 끝자락에 앉았다.
여느때와 같이 햇살이 먼저 들어와 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창가 바로 앞, 식탁의 맨 끝자락인 이 자리. 햇살을 만나기엔 너무나 좋은 이 자리가, 추운 겨울날에는 창문을 기어이 뚫고 오는 반갑지 않은 찬기에 발이 시리다.
그래도 뚫고 들어오는 이 찬기에 나는 수면양말을 신고 두꺼운 스웨터와 가디건을 겹겹이 입고서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커피 머그를 두 손에 쥐니, 조금은 몸이 따뜻해 지는듯 하다.
하나 둘 씩 윗 층에서 내려 오는 아이들...
반바지와 반팔에 맨 발로 내려와 냉장고에서 차디 찬 우유를 꺼내 시리얼에 붓는다. 그러고선 얼음을 꺼내어 컵에 넣고 찬물을 마시는 아이들.
보는 것 만으로도 내 이가 시리고 배가 차가워 인상이 절로 찌푸려 진다.
용기를 내어 한 아이에게 묻는다.
"...안춥니?..."
왜춥냐는 눈빛으로 하나도 안춥다고 대답하는 이 아이...
내가 이해가 안되는 구나... 4 대 1... 네명의 아이 모두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한 아이는 내가 몸이 안좋아 보이니 방에 들어가 쉬라한다.
한 아이는 내 곁으로와 나의 등을 토닥인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이 찬기를 느끼는 건 나 하나뿐...
나는 나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 수면양말과 스웨터를 벗어던지고 으샤으샤 맨손 체조를 해본다.
알이 두꺼운 내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고, 추워 시퍼런 내 입술에 틴트를 얹고, 찬기에 하얗게 질려버린 내 볼을 꼬집어 억지로 혈색이 돌게한 후, 식탁의 맨 끝자리인 나의 자리로 돌아와 아이들과 책을 읽을 준비를 한다.
수면양말은 그냥 신을걸... 두 발을 식탁 밑에서 살포시 비빈다.
얼음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먹는 한 아이가 부럽다.
추워 동동거리던 두발을 바닥에 차분히 두고 아이들에게 선포하듯 읽는다. 전도서 12장. ^^
너는 아직 젊을 때, 곧 고난의 날이 오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때가 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네가 너무 늙어 해와 달과 별이 보이지 않고 슬픔이 떠날 날이 없을 때 그를 기억하려고 하면 늦을 것이다.
그때에는 너를 보호하던 팔도 떨 것이며 지금 강한 너의 다리도 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빨이 거의 다 빠져 음식을 잘 씹지 못할 것이며 눈은 어두워서 보지 못할 것이다.
귀는 어두워서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며 음식을 씹는 소리가 적을 것이다. 그리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할 것이며 음성도 떨릴 것이다.
그때 너는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걷는 것도 위험할 것이다. 머리는 온통 희어지고 거동하기가 불편해서 몸을 제대로 끌고 다닐 수 없을 것이며 모든 의욕과 정욕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조객들이 네 집을 찾아들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은줄이 끊어지고 몸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며
육은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계속 가르쳤으며 그는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중에 많은 금언을 모아 정리하였다.
이 전도자는 바르고 고운 말을 찾으려고 애썼으므로 그가 기록한 것은 거짓이 없고 진실하다.
지혜로운 자들의 말은 양떼를 모는 채찍 같고 그들이 수집한 명언은 잘 박힌 못과 같은 것이니 그것은 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내 아들아, 이 밖에 조심할 일이 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써도 끝이 없으니 지나치게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들었으니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선하건 악하건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은밀한 것까지 다 심판하실 것이다.
그렇다. 너희도 내 나이가 되면 수면양말을 찾고 커피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날이 올터이니, 너희는 그런 날이 오기전에 너의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거라.
너희 온 평생에 그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거라.
너무 늦기전에...
집에서 몰래 신는 우리의 수면양말이란, 어쩌면 우리의 삶이 참으로 짧다는, 우리도 늙는다는 경각심을 고취시켜주는게 아닌가.
전도서 12장 열변을 토하고, 멀뚱멀뚱 아직도 얼음을 씹으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아이를 뒤로하며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수면양말을 다시 신었다.
꽁꽁 얼어버린 내 발을 주무르며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제인, 너에게도 이 세상 삶의 마지막 날이 온다는 걸 잊지 말고, 너는 너의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을 두려움으로 순종하며 섬기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