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한다면 그들처럼
7/14/20231 min read
대성통곡을 하는 조셉의 울음소리가 창세기 45장을 뚫고 나와 내 귀에 들리는 듯 하다.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바로의 궁전에서도 울려 퍼진 그의 울부짖음에서 지난 22년간의 그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작 17살이었던 그에게,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려간다는 것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난이었을까? 자신을 질투하던 형제들이 자신을 노예로 팔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또 노예로 살던 그 곳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했을 때도 그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22년이 지난 후, 자신을 팔았던 형제들이 그의 앞에 엎드려 있다. 지극한 가뭄으로 가나안 땅에 먹을것이 없어 이집트까지 내려가 먹을 것을 사야만 했던 이 형제들의 목숨은, 22년 전 그들이 노예로 판, 이집트에서 바로(Pharaoh) 다음으로 높은 조셉의 손에 달려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처럼 사이다 복수극은 없다. 너 죽고 나 죽자. 얼굴에 점을 찍고 나타난 조셉이 아니다.
조셉은... 너무 놀란 자신의 형제들을 되려 위로한다.
"Now do not be grieved or angry with yourselves, because you sold me here, for God sent me before you to preserve life." Gen. 45:1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라는 조셉의 말이 나는 너무나 놀랍다. 장엄하다.
용서라는 것이 그런 것일까? 나에게 잘못했던 사람의 마음의 무게를 덜어 주는 일. 그 사람이 나에게 했던 행동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과거에 나에게 했던 행동 때문에 드는 죄책감에서 놓아 주는 일.
조셉이 이런 용서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이 놀라운 방법으로 형님들을 구원하고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손들이 살아 남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이 곳에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로의 고문관으로 삼으시고 또 그의 모든 권한을 나에게 맡겨 온 이집트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45:7,8
조셉은 그의 고난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일하시고 계시다는 걸,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그의 하나님을 신뢰함이 그가 그의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에 큰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했다.
가룟 유다는 은화 30개에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았다.
백성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서서 구경하고 비웃었다.
자신이 유대의 왕이라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서 구원하라던 사람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하며 모독하던 예수님과 함께 달린 죄수.
그런 그들 앞에서, 아무말도 없으셨던 예수님.
아무 죄도 없이 채찍을 맞고, 조롱당하며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시면서도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3:34) 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까지도 그의 기도는, 그를 죽음까지 몰아 넣은 그 수많은 사람들의 죄사함을 위함이었다.
자신의 고통과 죽음 가운데에서도 그들이 용서 받길 원했던 주님.
하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미워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하시는 예수님. 그런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자기를 낮추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빌립보서 2:7,8)
이 모든 것을 인내하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조셉은 자신을 노예로 판 자신의 형제들에게 죄책감으로 걱정하고 자책하지 말라고 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 준다. 예수님은 무지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까지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그들이 용서받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신다.
조셉이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극심한 가뭄 가운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조셉이 했던 용서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아남게 하셨고, 그 살아남은 자손들을 통해 대략 1740년 후에는 유다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뜻을 이루셨다.
예수님께서 정말 그들이 한 말 처럼, 십자가에서 내려 오셔서 스스로를 죽음에서 구원하셨다면. 오늘 날, 우리에게 구원이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역사를 바꿨던 용서. 세상을 바꾸는 용서. 그리고 용서를 통해 행하신 기적.
우리가 하는 오늘 날의 용서. 하나님, 먼 훗날 어떻게 사용하실까. 한 가정을 살리시고, 그 자손들의 가정을 살리시고, 더 나아가 그런 가정들을 통해 많은 이가 구원 받는 역사를 이루시지 않을까.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날,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면, 반드시 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