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6/12/20241 min read
남편을 따라 미국 교회를 섬긴지 16년째.
그래서 그런지 가끔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동양인들을 보면 너무 반가워 격하게 반기는 나를 발견한다. "어디서 오셨나요?!!"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퍼스널 스페이스 따윈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교회를 너무 사랑하지만 그래도 나와 같이 생긴 사람들을 보면 이렇게 반가운걸 보니 동양인이란 공통 분모가 주는 의미가 꽤 큰 듯 하다.
"For where you go I will go, and where you lodge I will lodge. Your people shall be my people, and your God my God."
룻이 나오미를 따랐듯 나도 남편을 헌신으로 섬기며 따르겠노라 다짐했지만 지난 16년의 미국 교회 섬기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언어, 문화의 장벽이 높은 줄은 알았지만, 넘어보지도 못하고 겁에 질려 멈춰선 적도, '에잇' 눈감고 뛰어 넘다 걸려 넘어진 적도 많다.
이 경기는 내가 도저히 못뛸것 같다.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할때면 남편은 나를 또 어르고 달래 손을 잡고 허들을 같이 넘어 준다.
친정에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욱 쉬운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아버지도, 남편도, 남편의 형제도 모두 잃은 그 가정을 떠나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은 더 나은 결정이라고 말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오미 마저도 떠나는게 옳다라고 하는 상황에서, 룻의 선택은 소신 발언을 넘은, 자기 인생 전부를 건 모험과도 같다.
"여호와께서 나를 벌하셨다." (룻기 1:13) 라고 말하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룻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말한다.
흉년이 들어 오게 된 모압땅. 그리고 그곳에서 잃은 남편과 자식 둘. 시련과 고난의 연속인 나오미의 삶을 보며 그녀의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룻의 고백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기에게 익숙한 자기의 나라 모압을 떠나 한번도 가보지 못한 땅 유다에 가겠다라는 결심도, 많은 고난을 허락하시는 나오미의 하나님을 따르겠다던 그녀의 굳은 결심도, 결코 잠깐의 슬픈 감정에서 나온 요동침이 아닌, 가슴 깊은 곳의 확실한 믿음에서 나온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었던 것이다. 룻은 결국 시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그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란 이름으로 매일 밭에 나가 식량을 주워와야 했던 룻. 그렇게 높아 보이는 허들을 남편도 없이 혼자 넘던 룻을 생각하니 룻은 참 속사람이 강하고 아름답다 라는 생각을 한다.
삶가운데 닥친 어려운 시련 속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며 그 하나님을 떠나지 않은 룻.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했던 룻.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룻의 믿음과 순종을 크게 축복하셨다.
나오미를 따라 온 유다 땅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던 보아스와의 만남, 그들의 결혼, 그리고 그들의 아들 오벳.
시련 가운데 그 어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축복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우리 삶의 최악의 상황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는 걸 룻기를 통해 배운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sovereignty.
룻기를 읽는 동안 하나님은 조용하신 듯 했다. 그러나 우리의 지극히 평범한 이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걸 룻기의 마지막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 주고 있다.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룻기 4:21-22
Love, Loyalty, Faith...
어떠한 시련에서든 남편을 사랑으로 따르고 섬기고 싶다고 조용히 고백해 본다.
그렇게 매일 꾸준히 달리다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리고 우리 가정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이루실 것을 믿기에 오늘도 나는 허들 앞에 용감이 서서 뛰어 넘을 준비 자세를 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