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평범한 엄마의 하나님

3/31/20231 min read

dishes in sink
dishes in sink

중학교때 학급 문집에 올리려고 반 친구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다양한 투표결과 나는 ‘커서 가장 성공할 것 같은 아이’ 부분에 1위로 뽑혔다.

그도 그럴 것이, 고집이 황소 고집 같던 나를, 반 친구들은 융통성 없이 고집 하나로 밀어 부치는 나의 성격을 너무 너그럽게 표현해 준 것이다.

하고 싶은 건 해야만 했다. 엄마는 늘 “너 고집은 정말 똥고집이야.” 하며 늘 나를 똑 닮은 딸을 낳아봐야 한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씀하셨다.

저학년때 백일장 나가는 날 아침에 김밥을 싸주지 않으면 백일장을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망부석처럼 앉아 기어이 그 바쁜 아침에 엄마에게 김밥을 말게 했던 날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지금 엄마가 되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엄마가 얼마나 애간장이 탔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나의 무법자와 같은 성격.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도대체 얘는 뭐가 될까…”하는 걱정과 기대에 걸 맞게 나는 결혼도 일찍 했다. 아이도 일찍 갖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을 통해 더 이상 황야의 무법자와 같이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진혁이가 어렸던 어느 날, 마음 속에 하고 싶은 일들이 무수히 많아 마음이 복잡했던 그 날, 집안에서 빨래를 개며 내 옆에서 장남감을 갖고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다 생각했다.

‘나의 고집 때문에 이 아이가 힘들면 어떡하지?’

나의 주위를 늘 힘들게 했던 나의 고집이 이 아이도 힘들게 하면 나는 과연 행복할까?

마음 속에 고집들을 하나, 하나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주위 사람들이 먼저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남편은 자신을 격려해주고 옆에서 든든히 지지해 주는 아내가 필요했다.

내 안의 나를 비우며 우리 아이들과 남편이 필요로 하는 것들로 나를 채우다 보니 나는 이제 곧 마흔을 앞둔, 중학생 아들을 둔,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

어디에다 내 놓을 만한 명함도, 경력으로 가득한 화려한 이력서도 없다.

내 옷장에는 막내가 치토스 먹은 오렌지 손으로 마구 닦을 만한 편한 티셔츠들로 가득하고, 막내가 뛰면 더 빨리 뛸 수 있는 잘 길들여진 러닝 슈즈 한 켤레와 언제든 빨리 신고 나갈 수 있는 슬리퍼들로 가득하다.

나의 하루는 늘 5분만 더, 푸석한 나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로 시작하며, 아침 준비를 시작으로 저녁 설거지까지, 대단한 일은 없다.

이렇게 소박한 나의 하루는 그다지 인상 깊진 않다. 열심히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우리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기뻐하고, 가끔씩 하는 우리 가족 외식에 설레는 나는 가장 평범한 엄마다.

중학교때 나를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할 것 같다고 뽑아준 친구들이 나를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갈망하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삶.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나는 엄마라는 나의 소중한 자리에서, 아내라는 사랑스러운 자리에서 늘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아무 이름도, 직책도, 명예도 없이, 열심히 수고하는 것이 하나도 티가 안나는 나의 자리.

모두가 그냥, ‘아줌마’하는 나의 위치.

나의 이름이 없어진다 해도, 한없이 낮아진다 해도, 괜찮다.

아니, 영광이다.

낮아진 나의 자리만큼, 이름만큼, 나의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 지길 원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낮아지길 소망한다.

나를 구원하신 나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