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놀기의 달인

3/23/20231 min read

girl playing jumping rope
girl playing jumping rope

아주 어렸을때 엄마가 일하러 가시면 집에 혼자 남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우리 막내 나이만 했을텐데. 눈뜨자 마자 마주한 두려움에 어떤 아침은 잠에서 깨자마자 울기도 하고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없음을 알았을 땐 혼자 스스로를 달래보며 울음을 뚝 그치기도 했다.

전래동화 전집을 테이프로 들으며 엄마 아빠가 집에 올때까지 기다렸던 밤과 TV와 불을 다 켜놓고 옷도 갈아입지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던 어떤 밤들의 기억이 있다.

열심히 가위놀이 할 때에는 수많은 종이인형들이 희생됐었다. 종이인형을 자르다 실수로 목을 자르면 드레스를 입히지 못한다는 서러움에 목놓아 울었었는데. 테이프로 덕지덕지 종이인형을 다시 붙여도 자꾸 구부러지는 머리때문에 드레스가 맵시가 나지 않는다며 집에 있는 동전을 끌어 모아 기어코 문구점을 다시 가던 기억들이 난다.

또 어느 해 겨울날에는 그 가위로 언니의 새 잠바를 자르기도 했었다... 인상을 쓰며 기억을 더듬어봐도 도저히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나는 정말 이상한 애였다.

조금 더 커서는 꼬마 요리사를 흉내내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겁도없이 엄마의 튀김기로 멋지게 냉동 돈까스를 튀겨내어 친구들을 대접하기도 하고, 같은 골목에 살았던 친구와 그의 동생들, 또 앞집 아주머니까지 초대해 추석이나 설날에만 쓰던 우리집 잔치상을 거실에 펼쳐 놓고 수저와 젓가락만으로도 아주 세련되게 테이블을 세팅했던 것도 기억난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 쯤이 되면 내가 가장 좋아하던 분홍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곤충채집통을 목에 걸고 동네방네 누비며 곤충채집통이 꽉 차도록 잠자리와 매미를 잡았던 기억...

어린나이에도 1일 1떡볶이를 실천할줄 아는 진정한 떡볶이 러버였으며, 방과후 떡볶이 맛집탐방을 혼자서라도 즐기는 고독보다는 고집센 혼밥러였다.

이어폰으로 조용하게 혼자듣는 음악감상 보다는 훌륭한 음악은 당연히 이웃과 함께 해야한다며 창문을 열고 집이 떠나가라 H.O.T.의 전사의 후예를 백만번 돌려들으며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우리 가족들과 이웃들은 나를 도대체 어떻게 감당했는지...

겨울 밤하늘의 별들에 매료되 밤이 되면 집 앞에 나가 망원경으로 달과 별들을 관찰하며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혼자 감탄했던 기억도 있다.

늘 나를 방목하며 키우신 엄마 아빠 스타일에 나는 늘 고삐 풀린 망아지 아니, 망나니마냥 통제 불능, 언제나 독불장군같아 늘 나는 나혼자 컸다며 거만과 오만에 교만까지 겸비한 정말 팔방미인이었다.

어렸을적부터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보내며 혼자놀기에 달인이 된 나는 지금도 혼자놀기에 능하다.

팬데믹이 시작된 후로는 삼겹살을 더 맛있게 먹기위해, 내겐 문익점의 목화씨 재배만큼 중요한, 깻잎재배에 몰두하였고, Covid 19 Bread Club의 일원으로 천연발효종 (sourdough starter)을 사용해 빵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DIY를 한다고 집을 뒤집어 놓기도 하고, 꽃꽂이를 통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말괄량이 삐삐와도 같은 나의 마음을 다듬고 수련하였다.

물론 지금은 혼자논다고 해서 마음이 외롭진않다. 엄마 아빠가 그냥 거기 앉아 내가 노는 모습을 봐줬으면 하는 어린 마음에 서글프지도 않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나의 어린시절이 너무 외로웠음을 주님께 고백했던 적이 있다. 나는 혼자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늘 나와 함께 하셨다는걸 깨달으며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어렸던 내가 아침에 혼자 깨어 울때도 엄마의 튀김기로 겁도 없이 돈까스를 튀겨냈을 때에도 가위로 종이인형을 자르고 잘라도 내 손끝 하나 상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고 보살핌이다.

나의 모든 외로움을 아시는 주님. 그런 하나님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에 이제는 엄마 아빠가 없다고 해도 무섭지 않다.

오늘 아침에 시편 139장을 읽으며 나의 어린시절들을 떠올려 보니 다시금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있나 생각하게 되었다 .

"여호와여, 주는 나를 살피셨으니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께서는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며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내가 일하고 쉬는 것을 다 보고 계시며 나의 행동을 잘 알고 계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가 할 말을 다 아십니다.

주는 나를 사방에서 포위하시며 주의 손으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주의 지식은 너무 깊어서 내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를 떠나 어디로 갈 수 있으며 주 앞에서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주는 거기에 계시며 내가 스올에 가서 누워도 주는 거기 계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타고 바다 저편 가장 먼 곳에 가서 살지라도

주는 거기서도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오른손으로 나를 붙드실 것입니다.

내가 만일 '흑암이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이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는 흑암이 어둡지 않을 것이며 밤도 대낮처럼 밝을 것입니다.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내 몸의 모든 기관을 만드시고 어머니의 태에서 나를 베 짜듯이 지으셨습니다.

내가 이처럼 놀랍고 신기하게 만들어졌으니 주를 찬양합니다.

주의 솜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태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그 때에도 주는 내 형체를 보고 계셨습니다.

주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보셨으며 나를 위해 작정된 날이 하루도 시작되기 전에 그 모든날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Your eyes have seen my unformed substance, And in Your book were all written the days that were ordained for me, when as yet there was not one of them.)

하나님이시여, 주의 생각은 나에게 정말 소중합니다.

어쩌면 주는 그렇게도 많은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만일 그 수를 헤아린다면 해변의 모래알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내가 깰 때에도 주는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십니다."

시편 139: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