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pping boy

매맞는 아이

3/21/20231 min read

grayscale photo of girl holding her 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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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왕족에게나 있던, 왕자를 대신하여 매맞던 Whipping boy가 우리집에도 있다.

신분이 높은 왕자가 어떤 잘못을 해도 때릴 수 없었으므로 왕자를 대신하여 맞았던 Whipping boy.

나는 왕족은 아니나, 나의 태도나 마음 가짐이 나쁠 때에, 내 탓으로 돌리지 않고, 우리집 'Whipping boy'를 불러 나무란다.

'Whipping boy'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영문도 모른채 그의 아내의 매서운 눈초리를 맞는다.

나의 이런 나쁜 태도는 모두 다른 사람 탓이라며, '매맞는 아이'가 대신 매를 맞아야 한다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집의 '매맞는 아이'는 고스란히 이런 억울한 매를 견뎌낸다.

나의 태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나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또 누군가는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나의 이런 태도는 때론 쉽게 용서하지 못함으로 이어진다.

반드시 걸고 넘어져야 속이 후련한 나는. 그냥 한번 쓱 눈감아 '그럴수도 있지' 하면 될 걸. 반드시 꼬집고 지나가자 한다. 나의 이런 불편한 마음들을 내가 놓지 못해 '매맞는 아이'를 나무라는 나. 나는 이것이 꼭 옳은 일인 마냥 '매맞는 아이'를 벌을 주는 나를 치켜 세운다.

정말 공주도 이런 공주가 없구나. 이쁜척 하는 것 만이 공주병이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공.주.병.

걸려도 단단히 걸려, 없어질만 하면 다시 돋는 이 병. 해독제는 단 하나 뿐인 듯 하다. '낮아짐'

그 높은 신분에서 내려오는 그 때에 나는 이 병에서 다 나을듯 하다.

내가 이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사람을 나무랄수 있는 거구나. 내가 이 사람보다 더 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거구나.

나는 언제쯤 이런 지독한 병에서 나을 수 있을까?

바빌론으로 추방 되어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 그의 조상들이 지은 죄로 자신들이 벌을 받아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 라는 그들의 자세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시다." 라는 그 당시 속담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여호와가 공정하지 못하다."라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고난을 그의 조상들 탓으로 돌리고, 결국은 하나님 탓으로,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돌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이 나와 같은 공주병에 걸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상들처럼 범죄하고", "뻔뻔스럽고 고집스런" 백성들이라 말하는 하나님. (에스겔 2:3,4)

누군가의 죄로 의해 만들어진 환경에 우리가 놓여 질 때가 있다. 그것이 부모님의 죄로 인해 힘들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던,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너무 가슴 아픈 일이던, 우리는 누군가의 죄로 인해 반드시 피해를 입는 건 사실이다. 그것이 '죄'의 특성인것 같다. 내가 지은 죄는, 그의 결과는,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나의 주위 사람들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우리에게 감당하게 하지 않으신다. 죄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 모든 죄를 보고 듣고 느끼며 산다 해도...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진 않는다.

누구도 누구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행한대로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한 공의가 무엇인지 배운다.

오늘 나의 태도가 나쁜 이유는 내 안에 있는 죄 때문이다.

내가 나를 한없이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곤 결국엔 이 세상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좋으심과 그의 계획의 완전함을 믿지 않는 나의 부족한 믿음 때문이다.

'남의 탓', 'Blame'

내가 나의 죄에 책임을 다 할 때, 즉 내가 나의 죄를 남에게 미루지 않고 나의 죄를 인정하며 나를 나추고 높으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할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이 위험한 공주병 완치에 한발짝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낮아지신 분이 한 분 계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나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나를 위해 채찍을 맞고 십가자에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사하셨다.

나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나는 18세기 영국 공주도 아니고 강원도 작은 마을 지극히 평범한 공무원의 딸로 태어났지만, 이런 나를 위해서도 하나님 그분의 아들을 벌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하였듯 여호와는 불공정하셨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께 나의 모든 죄를 지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나를 용서 하셨다. 공주병에 걸린 나를 오늘도 용서하시고 그 죄를 모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죄 가운데 있던 나를 살리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시는 그 은혜. 나를 귀하다 하시는 그 사랑이, 나를 일깨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녀답게 다시 걷게 하신다.

나는 우리집의 'Whipping Boy'를 조용히 부른다.

"이제부터 나는 당신을 탓하지 않을 것이오. 내가 살이 찌는 이유는 당신이 내 다이어트를 도와주지 않는 탓이 아니라 늘 당신이 일 나갈 때 몰래 먹는 쿠키 탓이오.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당신이 나를 화나게 해서가 아니라 내가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이야기 하지 않은 까닭이요, 내가 불평하는 이유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지 않은 탓이요, 내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음이요, 내가 피곤한 이유는 당신 때문이 아니라 이 악한 시대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지 않고 시간을 아끼지 않은 탓이요. 내가 당신께 우리 주님께 순종하듯 순종하지 않는 탓이요. 내가 자꾸 머리 되려 하는 나의 악한 마음 때문이오. 자꾸 나의 죄를 당신께 탓해서 미안하오. 부디 나를 용서해 주시오."